인간은 시각을 통해 보는 것의 신비로움을 간과하듯
향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세계에 너무 무관심한 편이다.
#1.8 드러난 음모의 실체
공산주의가 옳은가 자본주의가 옳은가?라는 논쟁.. 인간세계에서 많은 피바람을 불고온 논쟁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다. 우리 식물계는 인간계와는 달리 철저한 공산주의의 논리로 운영된다. 왜냐하면 햇빛도 공기도 물도 모두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때문인다. 반면에 인간세상에는 자연의 산물을 노력의 댓가만큼 분배하는 경쟁주의로 운영된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신이 판단할 문제겠지..단지 역사는 항상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식물계에는 공산주의를, 인간계에는 자본주의를. 어쩌면 동물계에서는 공산주의가 고리타부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기에 크류 차장님의 말에도 어느정도 수긍도 된다. 하지만 어느 시스템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정책적인 판단이 선행해야된다고 생각하기에 섣부르게 선택하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 급하게 결정은 내릴 일은 없다. 그렇게 급하게 결정할 일이라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게 나의 판단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감정정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을 고민하는 나에게는 우리 식물계가 더나은 페러다임을 적용하길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고 역사학자들과도 논의하고 있다. 왜냐면 양자택일의 문제속에는 항상 선택과 포기의 장단점이 현실에 바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크류차장님은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였다.
"자네의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지식과 젊은 자네의 두뇌가 우리에겐 필요하네. 지금 식물계의 썩어빠진 그런 꼴통 페러다임이 아닌 자네의 향기나라에 대한 그런 체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단 말일세. 자네가 이 시스템 운영관리자로서는 적격이지."
"전 사실.."
"됐네..자네가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 편일세.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수는 없는 일이니까. 같이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새 퍼러다임을 고민해보기로 하세. 하하하"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차장님의 온화한 설득하는 모습과 함께 살기어린 차가움이 교차하며 그려졌다. 주파수가 얼굴에 그래프를 그리듯 불규칙적인 표정과 말투에 나는 섬짓해 해며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됐어. 하!하!하! 으하하~하~"
크류 차장님의 웃음소리가 동굴을 울리며 퍼져 나간다.
크류 차장님은 내가 승락이라도 한 것처럼 결론을 짓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의 향기속에 힘이 들어가는 걸 봐선 그게 그의 의도였고 아마 그의 선택에 어긋난 길을 내가 가려했다면 나를 다시 조각상을 조각하듯이 깍아 맞추려고 압력을 행사할 것같았다. 좀 더 가까이서 크류 차장님을 보니 구슬의 붉은 색이 더 빨갛게 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붉은 구슬은 아까전보다는 좀더 커진 것같았다. 나는 구슬이 좀더 커져가는 것이 구슬이 붉어지는 것만큼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님을 직감했다. 거대한 별이 붉게 타들어가다 커져서 한순간에 날아가는 우주물리학은 시스템 기초시간에 많이 배웠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크류 차장님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울부짓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악~으~!"
"살려줘~! 아~아~아~으~"
"차장님 왜 그러세요? 어디가 아프신겁니까?"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차장님을 보고 나는 순간 어쩔줄을 몰라하며 당황했다. 조금전만해도 멀쩡하게 말을 건네고 웃던 향기가 저렇게 절규하다니 말이다. 나는 붙드는 손에는 아주 강한 힘이 들어갔다가 흐느적 거리기를 반복했다. 구슬은 더욱 더 붉게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언가 대책을 생각하고자 했지만 눈앞에 일어나는 이 현상이 두렵기만하다. 제이 아저씨의 갑작스런 비명소리가 순간 뇌리를 스치며 나를 더 압박해왔다.
"으~으~으~~!"
"차장님~차장님~정신차리세요~"
왠지 심장이 고동치듯이 커져버린 붉은 구슬은 더 커졌다 줄어들었다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에너지.. 무언가 희열을 향해 달리다 시들어 버릴것 같은 아름다움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듯한 이 절정의 순간.
"차장님~어찌해야 됩니까? 말좀 해보세요!~"
나는 다급히 시들어져가는 크류차장님을 붙들고 소리쳤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니 향기의 구슬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 돼~차장님!!!"
"쨍그랑~!"
순간 붉은 구슬은 그 향기의 둘레가 비좁은 듯이 깨어져버렸다. 마치 별이 운명을 다할 때 붉게 커지다가 폭발하듯이 말이다. 수억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별의 폭발이야 '아름답다'는 감탄사정도로 끝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동료의 향기의 구슬이 별처럼 폭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도 힘에 버거웠다. 그 절규하는 목소리가 동굴을 시끄럽게 울려 대다가 멈추었다.
"피~시익~"
순간 크류 차장님의 향기는 붉게 타들어갔다. 단풍이 들어 식물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아주 빠르게 보는 것만 같았다. 크류 차장님의 향기는 그렇게 조금씩 공기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차장님!~ 크류차장님~!"
나는 차장님이 지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도 얼마나 울부짖어 댔는지 눈가에 눈물이 발라 붙어있다.
동굴에 정적이 흐른다.
우주의 무한한 공허함.
왠지 나는 무언가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분해의 과정을 느끼는 듯하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엔트로피의 시간속으로 존재감을 분해해 버려야 하는가.. 허탈함에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순간 나의 공허함속으로 들어온 무언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크크크크~"
이 적막한 동굴속에 저음의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린다. 마치 마이크와 마이크가 거울처럼 서로 마주보며 울리듯 깊고 깊게 동굴의 적막함을 채웠다.
"누구냐"
위협을 느낀 나는 두려움에 가엘 소장님께서 준 시계의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순간적으로 방향제 성분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퍼졌다. 무언가 따뜻한 온기같은 것이 나를 둘러싸는 듯했다.
"반갑네. 리겔."
"어디있는게냐. 비겁하게 숨지말고 당당하게 나와서 이야기를 해라!"
죽음을 목도한 나였기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죽음앞에서도 떳떳하게 죽어야한다고 되뇌었던 나인지라 어디서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하. 그런 허접한 것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차장이 죽는 퍼포먼스가 약했나 보군!"
음산한 그 목소리는 땅 속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크류 차장님의 향기가 서있던 그곳에 약간 솟아있던 그 땅속에서 말이다.
"너는 누구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흙이 솟아 있는 땅이 점점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 오자 나는 더 두려워 몸이 떨렸다. 그 저음의 웃음소리는 더 가까이에서 났다.
"차장과 조금전에 한 약속은 나와 한 약속이다. 사실은 내가 한 말이니까."
나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차장님의 향기에 남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안타까워 말게나. 차장이란 놈은 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놈이니까. 쓸모가 없으면 하루 빨리 사라져 주는 게 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 안그런가? 그 남은 임무인 너를 데려오는 것까지 완성을 했으니 이제 편이 놓아 드려야지. 크크크. 저 시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뚱아리를 버리고 자유로운 곳으로 말이야. 크크."
땅속에서는 웃음소리와 함께 흙이 꿈틀거렸다. 나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썩여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무력함이 밀려왔다. 그때 순간 시계의 버튼이 위치추적을 알리는 신호가 됨을 깨달았다. 그래! 시간을 끌면 가엘 소장님과 대원들이 구해주러 올 것이다. 시간을 끌자.
"나에게 원하는 게 뭔가?"
순간 땅속에서 큰 문어발같은 덩굴손이 뻗어나왔다. 그리고는 보호망도 아랑곳하지 않고 뚫고서 나의 눈앞에서 왔다 갔다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거? 크크크"
왔다 갔다하던 덩굴손은 순간 나의 목주변을 감더니 경고하듯 살짝 쪼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장난하자는 건가? 난 다 설명했는데...두번 설명하게 하지 말게나. 입이 아픈 것보다 내 성질이 참지 못하니까 말이다!"
점점 나의 목을 조아오는 통에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순간 나의 향기 속에서도 작은 구슬이 붉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렇게 여기서 죽는 것인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되는데.. 가엘 소장님...
"크크크~고통스럽나? 그렇겠지. 하지만 걱정은 말게. 죽이지는 않을테니까. 왜냐면 넌 아직 쓸모가 많은 놈이거든."
덩이손은 나를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내리쳤다. 순간 붉었던 구슬은 점점 투명해지고 고통도 사라졌다. 나는 이 놈이 누구일까? 곰곰히 생각했다. 아~크류 차장님이 '시퍼님'이라고 했지? 그래 분명히 기억이 났다. 이 '시퍼'란 놈과 대화로써 유도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짜피 놈이 원하는 것은 내가 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시퍼 당신은 왜 에너지를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건가?"
순간 시퍼는 대화에 응할 용의가 생겼는지 덩굴손을 땅속으로 넣었다.
"에너지!~"
시퍼가 한마디를 내밷자마자 땅속에서 무수한 구멍들속으로 공기들이 빨려들어갔다. 나는 순간 어 시퍼란 악당의 덩굴손이 여기 저기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놈은 공기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느껴지는가? 자연속에 녹아있는 에너지의 힘들이 말이야!!"
"내가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깨닮음 때문이지. 자네도 똑똑하니 곧 깨닫게 될꺼야. 자연의 섭리를 말이야!"
시퍼의 한 덩굴손이 땅 속에서 올라왔다. 그리고는 발라 비틀어진 나무 기둥하나를 대롱대롱 매달면서 이야기를 했다.
"한 인간이 나의 덩굴손에 목을 메달아 죽었지. 자네는 썩어서 구더기가 떨어지는 인간의 냄새를 느껴보았나?"
나는 시퍼가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 호응을 해주었다.
"그런 경험은 없네."
"나는 역겹도록 맡았지. 내 몸에 휘감긴 채 떨어져 내리는 시체의 냄새를 말이야. 처음엔 시체가 빨리 썩어서 그 냄새가 사라져 주길 바랬지. 아주 처음엔 말이야. 하지만 자꾸 그 시체를 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 왜 죽어야만 했을까? 무엇때문에 죽음을 택했을까? 그런 고민들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 그러는 번뇌에 쌓인 나에게 들리는 소식이 있었지. 데네브의 게이트웨이 개발말이지. 나는 그 기술을 훔쳐서라도 그 인간의 속사정을 알고 싶었네."
"그래서 그 블루투스 기술을 훔쳤나?"
"그래. 그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 자네는 데네브의 친구이니 그 녀석이 얼마나 멍청한 줄 알꺼야. 자신의 컴퓨터의 보안벽은 아주 튼튼하게 해놓지만 자신의 컴퓨터는 그냥 들고 가도록 네버려두지. 그래서 그 블루투스를 응용한 기술로 인간의 코속에 남은 냄새들을 해독하기 시작했지. 그리고는 그 인간이 죽은 이유를 알았지."
시퍼는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듯이 억양을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건 돈이라는 것이였어. 여자친구의 배신, 집안의 몰락과 사업의 파산, 가족의 교통사고 등은 부수적인 것였지. 그 돈이란 것은 인간세계에서 가치라는 의미와 상통하지. 그리고 그것을 향기나라의 언어로 해석하면 에너지라는 것을 나는 예측했지...자네는 지금은 못느낄꺼야. 하지만 나는 매일 그 썩어가는 향기를 맡으며 향기나라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고 생각했어. 매년마다 인간의 문명을 복사하는 우리 향기나라에 일어날 일들을 말이야."
시퍼는 무슨 종교적인 패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중생을 보듯이 나를 향해 애처롭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건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곧 우리 향기나라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의미하지. 아직은 모를껄세. 에너지의 불균형을 말이야. 하지만 그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듯이 언젠가 이 향기나라에서도 그런 죽음이 생길꺼야. 당연한 논리적 추리이지.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그때 나는 그 인간과 같은 멍청한 놈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결심했어."
결의의 찬 그의 기운은 다시 차가운 음산함으로 바뀌었다.
"불균형의 피해자가 되느니 차라리 경쟁자들을 제거해버리자. 쓸데없는 놈들이 사라져 준다면 그 에너지를 내가 대신 넉넉하게 사용할수 있지. 자네도 이해하지?"
"그래"
나는 갑잡스런 질문에 어떨결에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두려움때문일까 아니면 이성적인 결론이였을까 나도 나의 행동이 제어되지 않았다.
"자네도 그런 미래의 피해자가 되지 말고 나와 손을 잡길 바라네."
시퍼는 나에게 공감을 요구하려는 듯 조용하고 차근차근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나는 죽인다는 말에 이때까지 사건들에 놈이 개입되었음을 알고 울분에 차 말했다.
"그래서 그 많은 향기들을 죽여버렸나?"
"그것들은 향기라고 말할 건덕지도 없는 에너지 기생충들이야. 전혀 도움도 되지않는 소모적인 것들이지. 특히 식물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딸기들을 보게. 얼마나 한심한가? 인간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게 우리 향기나라에 무슨 유익을 주는가 말이지. 그런 쓰잘데 없는 것들은 땅의 에너지와 태양,공기,물등 무수한 에너지를 그 하찮은 열매를 맺으려 낭비해 버리는 기생충들이야. 당연히 사라져야 될 쓰레기들이지. 이 아름다운 세상의 에너지를 낭비시키지 않으려면 빨리 제거해 버려야 하지. 내일이라도 당장! 지금이라도 말이야! 역겨운 존재들이지. 기생충같은 것들.."
그의 더러운 욕설에 나는 딸기라는 존재가 그렇게 나쁜 존재들인지 새삼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왠지 내가 불구자가 되거나 다쳐서 세상에 발전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제거될 듯한 암시같았다.
"나는 그런 열매채소 식물들을 없애버릴 방법을 연구해왔네. 그건 곤충들을 활용하는 것이지. 곧 기생충들이 땅속 거름으로라도 쓸모있도록 영원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될거야. 말나온 김에 내일 당장 처리해 버리지머. 크크크"
피터의 말에 저번에 노랑 메뚜기의 습격을 당한 나의 사촌 베리가 떠올랐다. 그런데 어떻게 곤충을 조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곤충들을 조종할 수가 있지?"
시퍼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음...동업자이니 이야기하지. 하지만 섣부르게 발설을 했다가는 자네도 메뚜기밥이 될 줄 알아!"
순간 땅속에서 다시 덩이 손들이 꿈들거렸다. 그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다. 시퍼는 경고를 한 후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가엘은 똑똑한 놈이야. 그 녀석의 열성 또한 나도 인정하지. 나의 에너지 축적 계획이 그 망할 놈 때문에 지연되는 걸 번번히 지켜보야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가엘보다는 지금의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말게. 누설하는 즉시 동업을 파기하는 걸로 간주하고 쓰레기처리해버릴테니까. 크크"
가엘 소장님을 경계하는 걸보니 두려워하는 게 있기는 한가보다. 시퍼는 곤충에 대한 말을 이어서 했다.
"나는 그 블루투스의 기술로 고등한 동물인 인간의 향기도 읽었네. 그래서 에너지의 비밀도 알았지. 그런데 저렇게 먹을 것에 충실한 곤충들의 향기도 못읽겠나?"
당연한 듯이 읊조리는 그의 물음은 동굴속에 저음으로 울렸지만 박쥐의 고주파같이 나의 귀를 맴돌았다.
그 녀석들은 페르몬 향기같은 호르몬 향기로 교육을 하면 아주 말을 잘 듣지. 거기다가 내가 개발한 색다른 호르몬의 향기를 가미하면 여러 행동들을 유도할 수 있어. 게다가 멍청한 놈들에게 먹이까지 주면 나를 신처럼 여기지. 하하."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것 같아 조금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멍청한 곤충들은 이제 나의 든든한 무기나 다름없어. 멍청하게 먹을 것을 위해 생명도 불사하고 내 말을 들으니 말이야. 향기에서 기술을 읽어 무기를 개발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들지. 메뚜기나, 개미나 진딧물, 벌등 원하는 무기를 골라서 쓰면 되지. 저번에는 한 두마리 보냈지만 이젠 때거지로 보내서 쓰레기를 처리해 버릴 생각이야. 어때 간단하지. 크크."
이 녀석은 인간의 향기를 맡아 지성적인 부분에서 많이 진화한 듯했다. 나의 이성으로도 버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대신 인간들이 개발한 약품들을 쓰는 것은 나도 좋아하지 않아. 나도 그 냄새가 싫거든.."
시퍼와 대화하는 중에 갑자기 동굴밖에서 잡음들이 들려왔다.
"이런~간만에 대화 좀 통하는 녀석과 이야기 좀 하려고 했더니 훼방꾼들이 오셨군 그래..."
가엘 소장님이 오신 것이 틀림없다. 나의 위치추적 신호를 보고 찾아 오신 것이다. 순간 기쁨에 마음이 놓였다.
"저런 것들쯤 처리 해버리는 거는 순식간이야. 리겔... 하지만 그런데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놈들에게 나의 정체를 노출시키기도 아직은 싫어. 저 놈의 가엘 때문에 말이지. 어떻게든 실마리하나만 주면 물고 물고 늘어져서 나의 가슴에 비수를 꼿으려 한단 말이지. 크크. 그런 오늘은 이쯤만 하지. 약속한 게 준비가 되면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동업자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단 약속 기간은 다음 보름달이 뜰때까지로 하겠어. 자네 실력이면 그 정도도 길지.크크."
나는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약속 기간이 있다는 것에 당황해서 어떨결에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가?"
"크크. 죽음의 계곡으로 오게."
죽음의 계곡이라는 말에 나는 따지듯 대꾸했다.
"거기는 너무 멀고 위험해.!"
시퍼는 조금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땅속에서 꺼내어서 덩이줄기 손으로 나에게 건네 주었다.
"아니면 이걸 받아. 잘 간직하고 있어."
"내 향기의 구슬이야. 나는 향기의 구슬이 아주 많지.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을꺼야. 또 자네를 곤충으로부터 보호해 줄테니 도움이 될꺼야. 크크"
아주 검은 구슬이다. 향기의 구슬을 꺼내어 주다니 놈은 불사신이란 말인가? 나는 구슬을 받아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구~명심하게. 약속을 기한은 다음 보름달이 뜰때까지야."
그 마지막 음성이 동굴을 울림과 동시에 땅이 출렁거리며 시퍼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가엘 소장님께서 대원들과 황급히 동굴에 쳐들어왔다.
"자네. 괜찮은건가?"
가엘 소장님은 나의 향기 여기 저기를 훑어보며 일어난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찌 된일인가? 범인이 나타났나? 누구인가?"
나는 가엘 소장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정확히 이야기를 해야 할지? 대충 얼버무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느 것이 나에게 안전할까? 어느것이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혹시나 지나친 미래에 대한 지식이 시퍼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일으키진 않을까?
가엘 소장님의 그 짧은 한마디 질문에 수많은 고민의 가지들이 무성히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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