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개체가 되고 개체가 모여 사건이 된다.
#1.3 나비효과의 시작점
햇살이 비단같은 커튼이 물결을 어루만지다 주르룩~미끄러져 내려와 투명한 창문틈을 헤집고 들어온다. 저 깔끔한 책상과 반듯한 가구 배치는 어찌보면 체계적인 데네브의 직업을 반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 저기에 아기자기하게 숨어있는 귀여운 장신구과 사진들을 보면 데네브의 창조적인 기질이 또한 느껴진다.
"하는 일은 잘돼? 데네브"
"어~리겔. 언제 들어왔어? 나 참. 난 꽃봉우리를 열어놓고 있을 때는 계속 문을 닫는 것을 까먹는단 말이야."
데네브는 오늘도 컴퓨터와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데네브의 모니터에는 여러 프로그램 언어들이 퍼즐조각처럼 쌓여져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계와 식물계를 잇는 네트워크 게이트웨이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어?"
"응. 거의 막바지 단계에 있어.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하드웨어와 호완되는지를 체크하고 있으니 만약 별 탈이 없다면 곧 무슨 결과가 나올꺼야."
내가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시스템을 이론적으로 자문을 받을 수있는 시간이왔다. 나는 현실이란 곳이 얼마나 복잡한 줄 안다. 그래서 데네브에게 여러 정책들을 제시해 주면서 자문을 받는다. 데네브는 복잡한 현실의 여러 요소들을 몇가지 단순한 변수로 변환시켜준다. 이것을 모델링이라고 한다. 그러면 복잡하게만 보이던 현실도 단순한 가중치를 가진 변수의 동작으로 표현할 수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야기를 건성건성 받으며 말을 얼버무리는 걸 보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는다. 평소엔 잎에 진딧물이 간지럽혀서 못살겠다느니 긁어달래느니 못하는 말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리겔..."
데네브가 말끝을 흐렸다가 드디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너에게 말을 해야 될찌 고민하다 하기로했어. 이걸 숨기다간 더 큰 일이 벌어질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말이야..."
데네브의 눈빛에서 무언가 난처한 사정을 읽을 수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채 변명을 하려는 듯 데네브의 눈빛에서 죄책감이 느껴진다.
"뭔데 그래? 말해봐"
"응. 자네는 나와 다른 문제 해결 수완력이 있으니 나보단 나을꺼야... 다름아니라...쩝"
데네브는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이때 나는 데네브의 말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데네브도 아마 다른 누군가가 들었을찌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네는 내가 개발하는 네트워크가 그리 한 순간에 만들어 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뭐 아주 혁명적인 개발이라고 생각은 했지. 근데 다른 무언가가 중간에 있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데네브는 말을 이었다.
"노트북의 향기에서 네트워크를 연구하기 전에 작은 동기 부여되는 사건이 있었네. 그건 휴대폰의 개념보단 단순한 개념이었는데. 인간세계에서는 이것을 불루투스라고 부르더군.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통신을 하는 개념이지."
"오~그런게 있었나? 몰랐는데..."
"순간 나는 '이거다'하고 아이디어가 번뜩였어. 인간의 향기에서 더 많은 정보를 빼내기 위해 조금만 수정하면 큰 무언가가 발명되리란 걸 직감했지. "
"그래서? 자네가 그 기술을 개발했단 말이야?"
"응. 물론이야. 그 근접 통신 기술이 있었기에 인간세계의 네트워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빨리 얻어 낼 수 있었어. 그리고 이렇게 인간세계와 식물세계를 이어줄 게이트웨이의 완성이란 결과물도 이루었지.."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야?"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데네브는 이전의 경험을 추억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개발한 그 블루투스 기술을 활용해서 인간의 몸에서 향기가 전하는 정보를 직접적으로 뽑아 낼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직접 말이야? 오 정말이야? 놀라운데!!"
향기나라의 문명은 거의 인간세계의 복사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흘러들어온 향기에서 간접적으로 정보나 기술들을 추출해서 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한 복사를 위해서는 그만큼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데네브가 꺼낸 직접적이라는 말은 아주 놀라운 혁명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데베브는 놀라기는 커녕 왠지 언짢아 보인다.
"그런데 말이야. 문제는 그 인간의 몸에서 얻은 정보는 향기의 정보와 달리 아주 위험한 요소가 있었어."
위험이라...위험이란 단어를 데네브는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원래 순진한 녀석이라 그런 단어와 친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렇게 강도높은 단어를 선택한 걸보니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게 무언데? 무엇이 위험하단 말이야?"
"단순한 문명과 기술의 향기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아. 내가 위험하다는 말한 것은 인간 특유의 생각에서 묻어나는 향기야! 그 향기에는 식물의 향기처럼 향기로운 것도 있었지만 아주 파괴적인 향기도 있었어"
"뭐~?! 파괴적인 향기라고?"
가면 갈수록 단어가 격해지니 내 감정도 격해지는 것같다.
"그런 파괴적인 향기가 존재한단 말인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응. 나도 처음에 무턱대고 복사를 시도했지. 직접적이니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런데 복사때 이 향기는 아주 파괴적인 힘이 내제되어있더군. 나의 컴퓨터의 보안망을 부숴버릴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놀란 나머지 바로 그 향기 정보를 삭제해 버렸는데 말이야..."
나는 뜸을 들이는 데네브에게 재촉을 했다.
"그래서 삭제했는데 다시 살아나 공격을 했어? 아님 버린 쓰레기통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도하던가?"
"소설쓰지 말어...나참."
데네브는 과거의 일이라서 그런지 조금 침작하게 설명을 했다.
"문제는 그 기술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단순한 사실이야."
파괴적인 향기 이야기가 일을 저지르진 않아 다행이다. 근데 다행은 아닌 것같다. 또 도둑을 맞았으니 말이다.
"누가 말인가?"
"그걸 알면 내가 왜 안절 부절 하겠어? 직접 잡아서 가엘님에게 응징을 부탁했겠지. 나도 누군지 몰라. 하지만 나의 방에 잠입을 해서 나의 컴퓨터에서 비번을 해킹해서 가져갔단 말이지. 나밖에 모르는 비번에 꽁꽁 숨겨둔 기술이었는데 말이야. 나도 의문이야.."
둘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지금에서야 딱히 해결책도 없고해서 간단히 결론이 나버렸다.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기술의 유출이 그리 큰 문제가 되겠어?"
데네브도 인간에게 얻은 모든 향기가 파괴적인 것은 아니기에 그냥 넘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우선 가엘님에게 말씀은 드리자."
"그래."
데네브도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 둘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진 못했다. 그런데 데네브는 찝찝한 구석이 있는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요즘들어 향기 나라에 일어나는 일들 중 전에 없던 일들을 보면 조금 꺼림직 하단 말이지."
"걱정말게. 그런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거야. 현실에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란 법이 어디있어."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향기 나라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잖아. 누군가 기술을 훔쳐간 그 시기 이후라는 우연때문에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데네브의 눈빛에서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음을 느껴졌다. 이 친구 숨기는 것이 있을 때는 오른쪽 15도 위의 어떤 사물에 눈을 고정하는 습관이 있다. 오래 사귄 친구이다보니 그정도는 짐작 할수있다. 데네브는 어쩌면 자신의 기술이 위험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같다. 아니면 그 기술에 대한 과대 평가로 걱정이 앞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째든 간건 그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신 인간의 향기에 직접적으로 통신을 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히 신비롭게 다가왔다. 음...인간의 향기를 직접적으로 맡으면 어떤 느낌일까? 파괴적인 향기라...어떤 것일까? 우리 향기나라에서 향기들은 모두가 남에게 정보를 주거나 운송이나 교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말이다. 이타적인 향기도 아니고 이기적인 향기도 아니고 파괴시키는 향기라...무척 궁금하긴 하지만 그리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위험한 리스크(위험)를 굳이 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건 게이트웨이 개발에서도 그렇다. 게이트웨이를 통한 인간계와의 네트워크 개발은 지금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서도 혹시모를 만약의 위험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프로토콜과 보안을 접목시켰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법규를 제정하기 이전에 이런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니 조금 난처하긴 하다. 아무쪼록 아무일도 없어야 할텐데.
"걱정말어. 설사 누군가에게 들어갔다해도 자네같은 시스템 관리 프로그래머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걸 활용하겠어? 괜한 걱정말어. 그럴 걱정할 시간있으면 그 정성만큼 고민한 맛있는 커피나 한잔 타주게"
"그래. 알겠어. 괜한 우륵이겠지. 평소처럼 블랙으로 마실꺼지?"
"빙고!"
"사탕수수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설탕을 유통시켰다고 바로 블랙으로 먹다니 참 장미가문의 정치가 다워."
데네브는 커피를 타면서도 아직 마음이 안놓이는지 말을 이었다.
"내가 얘기한 여러 사건들도 있고 어제 꿈자리도 뒤숭숭해서 있다가 '잃어버린 동산'에 산책이나 가야겠어. 같이 가지 않겠어?"
"그래? 한번 보자... 조금있다 다니 부장님과 인공강우와 햇볕 저장 정책 활용에 대한 입법화 간담회가 있는데...뭐 시간은 되겠군. 그 전까지 돌아오면 되니 같이 산책 가자구. 친구좋다는게 먼가?"
데네브의 원두커피를 가는 소리에 맞춰 커피 향기들이 방안에 진동시키며 춤을 추는 것같다. 나는 이 커피의 밤하늘 같은 이 향기가 좋다. 뭐랄까. 분명 잘게 부숴줘 죽어버린 커피의 원두지만, 부서진 가루가 이때는 향기로 살아나는 것같다. 마치 생명의 탄생같은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
이때 꽃잎 창문으로 무언가의 눈동자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짧은 스쳐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눈동자는 사라졌다. 뭐지? 곤충인가? 분명 눈동자가 마주친 걸로봐서는 향기의 일종인거 같은데.
"리겔? 먼 생각을 넋놓고 하고 있어. 커피 다 식겠어. 어서 들어."
"어. 아무것도 아니야."
잘못본거겠지. 요즘 에너지 정책 간담회로 무리를 했나보다.
"이야~자네가 타주는 커피향은 끝내준다니깐! 캔커피로 상품화하면 대박나겠어!"
"과찬의 말씀을. 하하. 보통 향기들은 끓는 물에 커피를 내리지만 난 차가운 원두에 차가운 물을 내리지. 그 다음에 데우면 커피향과 맛이 오래 남아있어서 그윽하고 맛있어."
데네브는 이론과 설명이 나오기 시작하면 밑도 끊도 없이 삼천포까지 빠져버리기 때문에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데네브. 저기 안보이던 저 기계는 뭔가?"
"오~.예리한데.. 인공수정기야. 요즘 들어 씨앗 수정을 못하는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개발했지. 이건 동성끼리도 수정이 가능한 기계야. 예를 들어 자네랑 나 사이에도 수정이 가능하단 말이지. 하하"
"그래? 쩝~!시도는 좋은데 좀 꺼림찍한 기능까지 있군 그래. 아무튼 이웃의 씨앗없는 가족들에게도 권유해 봐야겠는걸. 요즘 들어 향기나라 씨앗 생산률도 많이 떨어져서 고민했는데 잘됐군."
나는 데네브의 집안의 신기한 발명품들을 보며 이것 저것 만져보고 작동하며 설명을 들었다. 역시 데네브는 컴퓨터와 발명의 천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이녀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발명품들을 쓰지 않고 대부분 핵심기술들을 국가나 사회에 공개를 하고 많은 활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심이 없고 순진한 친구이다.
"자~그럼 이제 슬슬 산책나갈 준비나 해볼까? 리겔?"
"그래. 서두리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저번처럼 덤벙대다가 앞뒤 바꿔입지 말고 말이야. 또그러고 패션이니 유행이니하고 변명한다면 이젠 아무도 안믿을꺼야. 하하."
간만에 '잃어버린 동산'에 간다니 마음이 설렌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나가듯 말이다. 그만큼 '잃어버린 동산'은 고향의 엄마 품처럼 친근하다.
"아~오랫만에 '잃어버린 동산'에 가는데 고목의 씨앗은 잘 있을려나 몰라. 빨리 보고 싶어지는군."
'잃어버린 동산'.
그곳은 옛날부터 그렇게 불렸다. 그 동산 자체가 하나의 큰 나무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실제로 가보면 정말 커다란 나무의 흔적이 있다. 둥근 동산의 모양을 한 나무기둥과 거기에서 뻗어나온 커다란 뿌리들을 보면 이해를 할 것이다. 그 뻗어나온 뿌리 하나가 보통 나무 줄기 두께만하기에 만일 나무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컸을런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커다란 나무는 그 웅장한 위엄으로 인한 작은 식물들과의 괴리감이 무척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과 하나가 되려 큰 나무 몸뚱이를 버렸다고 한다. 그 향기는 지금도 떠돌고 있는 샤론의 향기이다. 그 고목 동산의 중앙에는 큰 호두같은 '생명의 씨앗'이 있다. 그 씨앗 덕분에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옛날부터 있던거라서 그런 거려니 한다. 그렇다고 씨앗을 부수고 난 뒤에 '사실이였구나'하고 죽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생명의 씨앗'에는 깨알같은 글씨가 새겨져있다. 누군가가 새겨 놓았다고 하는데 옛날 글씨라 고고학을 전공하는 제이 선생님 정도는 되어야 읽을 수 있다. 나는 가끔 제이 선생님께 그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 그 시간은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것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다 됐어. 가자구."
"그래. 꽃봉우리의 문 잘 잠그는거 잊지말고 나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동쪽을 따라 상쾌한 바람이 분다. 간간히 코스모스 향기가 나는 걸 보니 다니 부장님께서 먼저 가셔서 에너지 정책 간담회를 준비하시는가 보다. 올해의 에너지 개발 예산에 맞추어 정책을 운영하려니 여간 머리가 아픈게 아니다. 이번에도 미래학자모임에서 태양의 수명이 짧아 지고 있다고 대체 에너지 개발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주요한 정책 입법이 더디어 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내가 볼때는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온난화에 따른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가 더 시급한 문제이다. 옛날 동면을 하던 식물들도 이제 버젓이 한 겨울에도 돌아다니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들에 대한 복지 문제도 조만간에 붉어져 나올 것이다. 아무튼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아오기엔 조금 빠듯한 시간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은 동풍이 불어오고 있어 다행이다. 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동풍 덕에 산책하러 가는 이동시간은 좀 줄어들 것이다. 돌아 올 때에는 좀 건조하겠지만 서풍이 불어준다면 금상첨화일텐데 하고 기대해 본다.
'小說주의보 > 향기나라뮤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향기의 구슬과 한장의 편지 (0) | 2012.02.23 |
---|---|
#1.5 향기없는 범인 (0) | 2012.02.22 |
#1.4 잃어버린 동산 (0) | 2012.02.21 |
#1.2 향기란 모호한 정의 (0) | 2012.02.17 |
#1.1 사렛마을의 아침풍경 (0) | 2012.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