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를 모르는 인간들과
아직 나를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 From Rigel -
#1.1 사렛마을의 아침풍경
"긴급 속보입니다. 어제 저녁에 갑작스럽게 내린 사자자리 유성우로 버들나무언덕 버섯길에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로 결혼식을 앞둔 프레세페 양의 꽃잎이 떨어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는데요. 자세한 현장 소식을 라이언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라이언 기자? "
'음...안타까운 소식이군...쩝~'
나는 아침엔 웅크렸던 잎을 활짝 펴고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소식들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아침을 알리는 상쾌한 찌르래기의 지저귐처럼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새로운 하루가 어김없이 오늘도 시작됨을 친절히 알려준다.
"어제 오후 1시경 물푸레 언덕 기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랑 메뚜기 때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결실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딸기꽃 베리양이 잎이 절단되어 먹히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베리양은 ...."
'저 아가씨는 나와 먼 친적관계인거 같은데.. 예의상 문병을 가줘야 되는거 아닌가? 듣기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는데...그나저나 그럴 시간이 나려나 몰라..오늘도 일정이 빠듯한데 말이야.'
아침부터 나는 여러 뉴스를 듣고는 있지만 사실은 오늘도 이런 큰 소식에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애듯한 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아직도 이런 소식조차 듣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오늘도 분주한 하루가 되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어서 날씨 소식입니다. 지금은 안개가 조금 옅게 끼어 있는데요. 해가 뜨자 마자 동쪽 평야부터 걷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전반적으로 햇살이 화창한 초 여름의 날씨가 되겠습니다. 대호수 주변의 날씨는 맑겠고, 햇볕의 밝기는 평소때와 같은 10만 럭스정도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날씨변동이 잦은 둑방과 산간지방에서는 계곡풍에 따른 돌풍에 주의하시고, 협곡 주변에서는 지역적으로 지나가는 소나기와 우박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은 10mm정도의 비소식이 있으니 미루신 광합성 분량은 오늘 미리 마무리 지으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비로 인한 꽃잎 피해가 없도록 꽃봉우리를 잠그는 것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날씨였습니다."
오늘은 화창한 하루가 되겠군. 아~오늘도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은 미토콘드리아 하나가 아프거나 얇은 물관 하나가 막혀도 정말 괴로운데 일인데 말이다. 이렇게 일상이란 시간 속에서 나를 느끼고 나를 움직이고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스릴있는 일이다. 하하 오늘도 나에겐 행운이 함께 한다는 노크소리가 들리는군.
"어이~ 리겔. 좋은 아침이야. 간밤에 잘잤어? 욱신한 몸도 풀겸 아침 운동어때?"
갈대의 풋풋한 배경이 뭍은 오리날개 냄새가 좀 섞인 나의 친구 베델의 반가운 향기이다.
"굿모닝이야. 베델ㅎ. 나야 대 환영이지."
"좋았어~. 아침 이슬이 지기 전에 연꽃 언덕 한바퀴~나이스~"
저 녀석의 아침 운동 코스는 항상 비슷한게 흠이다.
"오늘 운동땐 대화 상대가 있어서 기분이 훨씬 가볍겠는걸. 하하. 그리고 너 요즈음 재탕(*주-아침 먹고 또 자는 행동)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사실이야? 내가 보니까 네 꽃잎이 아침에 좀 조는거처럼 보이던데?
"무슨 소리야. 난 아침형 향기라고 생사람 잡지말어~참."
"아님 말고..도둑이 제발 저리는건 아니겠지? 하하. 오늘도 더 힘찬 항해를 위해 개운하게 한판 아침운동을 하자구. 운동으로 향기가 더 가벼워지고 날개가 튼튼해져야 저 헐몬산까지도 한번 가볼꺼 아니야? 어때 좋지?"
"그래~알겠어. 근데 헐몬산까지라고..거긴 너무 멀지 않을까? 그기까지 가는 길에 있는 죽음의 계곡은 듣기만 들어도 소름끼치는데 말이야...."
헐몬산은 거기를 등반한 어떤 향기가 기록한 탐방 여행기에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의 계곡란 곳은 워낙 차가운 곳이라 향기로는 이동하기가 무척 힘든 곳이다. 그 탐험가는 죽음의 계곡에 향기를 잡아먹는 불을 뿜는 개미지옥이 산다고 한다. 하지만 영~신빙성은 없다. 그치만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향기들 중에 거의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그건 그렇고 그 연못 속에 사는 양탄자 배를 탄 것같은 가시연꽃은 아직도 피어 있겠지? 사실 난 가시연꽃의 수수하면서도 톡쏘는 향기가 너무 좋거든... 난 그 애의 톡톡쏘는 피부와 하얀 꽃잎의 가녀린 라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아~"
"뭐...물론 그 애는 아직 자신의 향기를 못 느끼겠지만 말이야. 쩝~하루 빨리 꽃이 지지않는 이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할텐데 말이야!"
그렇다.
아직도 물가에 있는 우리 사렛 마을에서조차 향기를 맡지 못하는 친구들이 조금 있다. 아니 정확히는 향기에 대해 가물가물하다고 해야하나? 이 친구들은 향기의 존재에 대해 믿음이 없기때문에 향기를 맡아도 그냥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 정도로 생각한다. 아니면은 풀숲의 작은 개미나 진딧물이 사뿐 사뿐 지나가는 것 그 정도 쯤으로 생각하거나 말이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향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난처한 일이다. 사실 그런 친구들은 어제 내린 빗물에 따스한 햇살을 마시는 아침 식사만으로 하루를 만족해하기에 내가 전하는 새로운 향기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네들도 하루 빨리 향기를 알게 된다면 같이 향기로 여행도 가고 이웃나라 탐험도 하며 자유롭게 이야기도 하면 좋으련만 말이다.
사실 향기를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향기를 다루는 내공이 쌓이면 몸까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습지의 식충 식물들은 그렇게 해서 빠르게 움직여 야생곤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뭐 우리같이 햇빛만 먹고 사는 채광주의자들에게는 너무 야만스러워 보일 뿐이지만 아직 그런 식충이 친구들을 직접 만나보진 못했다. 산속 계곡 습지에 산다는데 아직 바람에 향기를 실어 거기까지 항해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요즈음 들어 영혼을 향기에 실어 여행을 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행방물명이 된 친구들의 소식을 적잖히 들었다. 하지만 향기로 이동하는 중에는 몸이 없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미궁일 뿐이다. 무서운 거미줄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갑작스런 돌풍에 바다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저 시들어가는 친구의 몸을 보면서 하루 빨리 돌아와 회복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리겔! 안나오고 뭐해..빨리 가자니깐 아침이슬이 지면 연꽃들의 싱그러운 향기가 반감된단 말이야!"
"알았어~조금만 기다려~곧 나갈게. 성미하고는..."
나는 혹시라도 모를 - 향간에 떠도는 소문이지만 유비무환이라지 않는가? - 침입에 대비해 꽃봉우리를 단단히 닫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향기에다 나의 따스한 영혼을 조심스레 싣는다.
"빨리 나와 해가 뜨려고 하잖아"
"알겠어 알겠어. 꽃잎을 그렇게 빨리 닫으려면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친구~"
저멀리서 햇살이 가느다란 광채들을 사방으로 뿜어져 내는 걸보니 곧 태양이 떠오르려나 보다. 신이난 새들도 분주하게 날개짓을 파닥거린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베델과 부짖힐 뻔했다.
"빨리 가자. 가시 연꽃이 꽃봉우리를 활짝 피운 모습은 정말 황홀하단 말이야~향기도 끝내 줄꺼야~하하"
"이런 넌 운동보다는 연꽃 생각이야? 그 얘는 아직 향기도 못맡잖아..아마 너의 남자다운 매력을 이해 못할껄~"
"그치만 가까이에서는 말을 걸수 있으니 자주 가서 이야길해 보려구해. 열번 찍어서 안넘어가는 꽃이 어딨겠어. 하하"
"알겠어. 그럼 난 옆에서 러브스토리 구경이나 해볼까?"
그때 어디선가 사람의 향기가 난다.
"리겔~사람이야!! 가서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있는지 향기구경 좀 하고 갈까?"
"안돼. 먼저 운동부터 끝내고 오는 길에 이야기 듣자..해가 뜨자나 연꽃이 닫히고 있을꺼야. 괜찮지?"
"알겠어. 넌 목적이 이끄는 삶 그 자체구만. 이거야 원 연꽃생각뿐이니..쩝."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중의 하나는 인간의 향기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물론 향기에 묻어있는 여러 일상의 이야기들은 인간들에게는 하잖은 것들이다. 하지만 문명적으로 조금 떨어진 우리 식물들에게는 좋은 정보의 원천이기도 하다. 옛날 어느 사진기자가 이 곳의 풍경을 찍기위해 방문했었는데 그때 전해진 칼라사진 향기 덕에 요즈음 우리 마을의 사진 기술도 다채롭게 찍히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향기로 이룩한 문명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지금은 인간 문명에 대한 부분적인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룩한 향기의 문명으로 저 인간과 소통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 분야에 정통한 나의 친구 데네브가 있기 때문이다. 곧 우리는 인간 네트워크와 우리의 향기 네트워크를 연결할 게이트웨이와 프로토콜을 조만간 개발할 것이다.
"이봐~벌써 가시연꽃 향기가 느껴져."
"그래..아~정말 아름다운 향기야...태초의 그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정말 도도한 향기야..저 도도함에 어울리는 향기를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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