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추억의습작들('08)

2πr[16] 시장한 시장

별신성 2012. 2. 15. 20:51

시장한 시장 


          박원주 


내가 가끔 다니는 버스편에는 
문도 없이 왁자지껄한 분주한 시장이 있다 
그 곳에는 내 심장을 새롭게 뛰게 하는 
갓 무쳐진 삶의 시장함이 있다 


그 곳에선 주름 많은 할머니도 열심히 장사란 걸 하기에, 
찬송가를 틀며 바닥을 기는 아저씨의 돈통도 채워져 가는 곳이기에, 
이 젊은 가슴이 주욱 펴지며 생의 눈망울이 초롱 커진다 
뜨거운 일상의 증기 속에도 나를 반겨주는 순대가 사는 곳. 
불어 터져가는 잡채를 안은 순대는 
흘리는 피도, 죽어버린 내장도, 심지어 내 고독까지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생의 소중함이라 외쳐 댄다 
클래식하게 찐하게 울리는 번데기의 냄새. 
주글주글한 내 마음의 시름도 구수한 번데기 국물마냥 시원스럽게 펴진다 
가판대 모여 앉아 수다 떠는 새큼한 다래들은 
시들어가는 세상 속에도 힘을 잃지 말라고 
생생한 응원의 몸짓을 나를 향해 날려준다 
좁아터진 어항 속에서도 이리 방긋 저리 생글 마냥 즐거운 횟감 고기들. 
날마다 새롭게 희망찬 물결을 헤이며 
죽음 앞에도 당당한 너희들이 부럽기만 하구나 
넉넉히 듬뿍 담아 팔아도 끝없는 시루 속 콩나물의 향연. 
주어도 주어도 노랗게 올라오는 그 깊은 열정이 대견스럽다 
타지로 떠나와서 피부가 상할 법도 한데 
미역은 항상 윤기나는 얼굴로 죽어가는 인생에게 건강미를 자랑한다 
진정 도토리였을까 찬란한 묵의 거듭남. 
내 인생도 졸깃한 묵처럼 든든한 피라미드 날을 세울 날이 오겠지 


시장의 풍성함에 킁킁대며 떠돌다보니 
뻥튀기같이 하루가 행복하게 튀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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