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먼저 일까? 끝이 마지막 일까?
시작도 끝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우리는 본 사실처럼 이야기한다.
#1.19 뭍혀버린 향기의 씨앗
나의 예상과는 달리 두루마리는 우리를 생명의 씨앗속으로도 제이 아저씨나 가엘 소장님의 머리속으로도 데려가지 못했다. 왠지 나의 상상력이 약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왜 안되는거지? 난 충분히 씨앗속으로 갈 용기가 있는데.."
옆을 쳐다보니 생명의 씨앗이 점점 땅속으로 파뭍힌게 보였다. 나의 몸의 열정도 식어져 가는게 느껴진다.
"우선 생명의 물을 원점으로 돌려놔야해. 이러다간 생명의 씨앗이 파뭍혀 버리겠어. 그럼 우리 모두는 끝이야"
"그걸 모르는 향기가 어딨어? 생명의 물을 시퍼가 가지고 있는데 어쩌라구.."
시퍼.. 생명호수의 물.. 향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있는 단서보다 시퍼란 존재만 확실하게 느껴질 뿐이였다. 이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퍼가 강하다면...시퍼가 가진 강한 모든 것들이 강한 연료처럼 불소시개가 되지 않을까? 다만 내가 작은 불만 붙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거야!"
"머가? 먼데?"
"생명의 물을 되찾을 방법이 생각났어!"
"어떻게?"
"시퍼가 강한 놈이라면 그 강한 연료에 불만 질러주면 돼. 그럼 생명의 물은 원래 가져온 데로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꺼야."
"말은 쉽지만 그게 잘 돼? 연료는 뭐고 불은 또 어떻게 질러?"
"그러게 시퍼를 강하게 하고 있는 시퍼가 가진 연료는 뭘까?"
"시퍼가 가진 능력의 근원은 아마 친구 데네브가 말한데로라면 녀석의 힘의 근원은 인간의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어. 그 바이러스처럼 해킹한 그 녀석의 지식의 근원인 네트워크를 끊고 녀석의 생각을 마비시켜야해. 그다음에 녀석을 죽이는거지. 방법은 모르겠지만.. 우선 네트워크 전문가인 데네브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어. 문제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는게 가장 빠른 법이자나. 그나저나 데네브는 저번의 네트워크 도킹시스템은 다 완성했나 모르겠네?"
나는 허겁지겁 데네브에게로 날아갔다.
데네브는 바이러스로 오염된 이 상황에서도 몸을 끍으며 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었다.
"데네브! 잘지내고 있어?"
"아니 이게 누구야? 리겔! 오랜만이야! 요즘 시퍼일로 수고가 많지?"
"내가 널 보니 너가 더 고생이 많아 보이는데? 어찌 네트워크 개발은 잘되고 있어?"
"응. 보는바대로. 이제 마침표가 보이는 상태지. 하지만 내가 시퍼에게 내 기술을 빼앗겨서 일이 이지경까지 와버린 걸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물론 그게 시퍼에게는 득이 될수도 있지만 해가 될수도 있지."
"네가 맘고생이 심할꺼라고는 생각했어..근데 그 기술이 왜 시퍼에게 해가 된다는거야?"
"왜냐면 이 네트워크 도킹시스템의 개발 코드를 내가 짯으니까! 내가 더 잘알지. 내가 녀석을 해킹해서 좌지우지 할 수도 있지. 물론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하하. 하지만 녀석이 내 네트워크 기술로 인간의 정보와 기술들을 빼내와서 힘이 더욱 커지긴 했지만 그 힘을 유지하기는 버거울 꺼야. 인간들의 정보와 기술을 활용하려면 그만한 자원과 연료가 필요한 법이거든. 인간세상에서는 지식을 저장할 저장공간 서버가 필요하고 또 그런 저장공간을 돌리는 전기에너지도 필요하지. 하지만 우리 향기나라에서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그 시퍼란 놈이 그 에너지원을 죽음의 계곡에서 얻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그곳은 용암이 끓고 있어서 그걸 가공해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듯해. 하지만 향기나라 식물에게 그 열이란 존재는 큰 위험부담 아니겠어? 에너지원으로 쓰기엔 줄기나 뿌리가 열에 노출되고 설사 줄기나 뿌리를 보호한다 하더라도 향기는 곧 날아가버리기 쉬우니까."
"그럼 줄기나 뿌리는 그렇다 치고 시퍼는 어떻게 자기 향기를 유지하는 걸까?"
"향기를 유지하기는 어렵지. 특히 열안에서는...아마 그걸 대체하는 수단으로 자기 향기가 꺼져가는 걸 다른 향기의 구슬로 연명하는 듯해."
"그렇군.. 흡혈귀같은 놈이지.. 향기들을 가지고 놀다가 향기의 구슬만 먹어치우고 있어."
"하지만 시퍼도 향기구슬이 일시적인 수단밖에 되지 않는 걸 잘 알꺼야. 또 향기들을 모으기 귀찮기도 할꺼구 말이야. 그래서 생명의 씨앗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쓰려고 하는거 같아. 하지만 알다시피 생명의 씨앗은 우리 향기나라 모두의 에너지원이잖아? 그걸 혼자서 독점하려 하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모두가 죽게 생겼지.. 바보같은 시퍼같으니..
"원래 욕심에 눈이 멀면 미래를 바라볼수 없는 법이지."
"아참! 그나저나 시퍼에게서 생명호수의 물을 되돌려 놓으려하는데 방법이 없겠어?"
"음..그러게. 나도 방법을 한번 찾아 볼게. 그런데 바이러스가 전 나라에 퍼진 상태라 생명의 샘에서 샘물이 조금 흘러나오자마자 향기들이 바로 훔쳐가버리더군. 이러다간 바이러스라는 눈앞의 문제해결이 급급하다 생명의 씨앗이 파뭍혀버리는 불상사가 생겨버리겠어. 생명의씨앗은 아주 민감한 에너지원이잖아? 이전에도 태양의 흑점이상때문에 생명의 씨앗이 민감하게 반응해서 땅속으로 뭍혀가는 바람에 모두들 노심초사했었지."
"맞아. 지금 바이러스와 엎친데 덮친격으로 태풍까지 불어서 향기나라가 아수라장이지. 허브향을 뭍히지 않았던 향기들은 거의 감염되었어. 근데 더 큰 문제는 생명의 씨앗이 위태하다는거야. 생명의 샘물이 수분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땅속에 지금 거의 뭍혀버렸어..이러다간 우리 모두 에너지를 잃고 말꺼야.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생명호수의 물을 빨리 되돌려야하는데 그게 저 시퍼를 꺽지 않고는 힘들듯해."
"그치..내가 네트워크를 해킹해서 시퍼를 컨트롤하면 좋겠지만 아직 그정도는 아니야. 미안해. 나도 노력중이야.."
우리는 눈앞에 놓인 시퍼란 문제의 커다란 장벽만 다시 확인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스위치를 가져가. 시퍼에겐 유용할꺼야. 이 스위치는 잠시동안 주변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킬수 있어. 무선 네트워크도 민감하게 해킹하는 시퍼에게는 유용할꺼야. 스위치를 켜는 순간 여기로 접속시켜 버릴테니까. 오류를 알고 빠져나오는데 버퍼링 시간이 좀 걸릴꺼야. 하하.
"고마워. 유용하게 쓸게. 그리고 네트워크로 시퍼를 공격할 수 있는지도 체크 좀 해줘."
"알겠어. 난 할 수 있는게 프로그래밍 뿐이니 내가 짠 시스템을 쓰는 시퍼를 좀더 해킹해 볼게. 분명 빈틈이 있을꺼야. 너도 수고좀 해줘."
"응. 알았어. 너도 수고해."
나는 다시 생명의 씨앗으로 돌아왔따. 예상했던 대로 생명의 씨앗은 거의 다 뭍혀버렸다. 점점 으스스한 찬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내 향기의 움직임도 느려지는 듯했다.
"오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생명의 씨앗이 거의 다 잠겨 버렸어요. 게다가 가엘소장님의 향기도 너무 약해졌어요. 또 모든 향기나라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구요."
"어떡하지. 가엘소장님밖에 이 난관을 극복하는 법을 아시는 분이 없을 텐데..."
가엘소장님은 점차 향기가 식어 공기와 구분이 안될 정도셨다.
"우선 가엘소장님이 돌아가시기전에 가엘소장님을 만나야해. 우선 가엘 소장님께 가보자. 시퍼를 이길수 있는 방법을 가엘소장님이 아실꺼같아"
"근데 어떻게요?"
"뭐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 이 두루마리."
"근데 방금 전에는 안됐었잖아요."
"그치.. 하지만 한번 안된다고 영원히 안되란 법은 없잖아. 다시 한번더 해보자"
우리는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가엘소장님의 머리속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동하기는 무리였다.
"우리가 가엘소장님의 머리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좀 오바겠지?. 잘못하면 소장님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르고.."
이때 두루마리에서 가엘소장님의 음성이 들렸다.
"리겔.."
"소장님?!!"
"리겔.."
"소장님의 음성이다!!"
"그래..나는 이제 힘이 거의 없어서 너희를 내 속에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하지만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서 네게 말을 남긴다. 내가 죽기전에 나의 향기의 구슬을 빼내어 가져가거라. 향기의 구슬은 깨어질때 폭발력이 있는데 내 것은 향기나라에서 시퍼에 버금갈 정도로 위력이 강하단다. 비록 지금은 약해졌지만 시퍼를 공격하기엔 유용할거다. 내가 지금 힘이 없으니 내가 죽기전에 꺼내어서..."
"뚝!"
"소장님!! 소장님!!! 가엘소장님!!!"
소장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우리는 옆의 소장님을 쳐다봤다.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이신가 보다. 향기의 구슬을 꺼내라는데..이상황에서 어찌 꺼내란 말인가.. 아..
"오빠. 빨리요! 소장님의 유언이잖아요..대를 위해 소를 감수해야죠.."
"난 그렇게는 못해. 그렇게는.."
"소장님의 향기가 거의 꺼졌어요. 빨리 안 꺼내면...곧 사라져버릴꺼예요."
"난 그렇게는 못한다고! 못해!"
순간 희미하던 소장님의 향기가 꺼져 버렸다. 아.. 향기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소장님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줄이야.. 나는 향기구슬을 잃는 거보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억울하게 느껴져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시퍼 이놈을 내가 가만두나 봐라. 가! 가자! 내가 당장 없애버리겠어!!"
"오빠. 진정해. 오빠 마저 흔들리면 어쩌라고. 방법을 찾아 봐야지.."
소장님의 향기가 사라지고 소장님도 사라져버렸다. 생명의 씨앗도 땅속에 잠기자 향기나라의 온도도 급속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아..정신차려야지. 빨리 서둘러야겠어.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다시 시퍼의 연료와 불을 생각했다. 시퍼의 연료가 용암의 열기라면 용암을 식혀버리면 되지 않을까? 근데 뭐로 식히지..나는 혼자서 방법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시퍼의 에너지를 뭘로 식히지? 용암을 뭘로 식히지..뭐로 식히지.."
"용암을 뭐로 식히긴 물로 식히지!"
"응??"
물이라는 제인의 말에 나는 시퍼가 가지고 있는 생명호수 물을 생각했다.
'그래. 아.. 내가 생명호수를 가져올 생각만 했지 활용할 생각을 못했구나. 그래. 안전하게 다 가져올 필요는 없지!'
"용암은 물로 식히는거 당연하거 아냐?"
제인이 의아한듯 당연한 소리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래. 하하. 당연한거네!"
순간 머리속에 가엘소장님의 유언이 떠오르면서 시퍼를 쳐치할 시나리오가 스쳐지나갔다.
"가자! 제인!"
"그냥 가? 대책을 좀 생각을 하고 가야지. 그냥가면 어떡해?"
"너 오빠 믿지?"
"오빠야 믿지만.."
제인이 나를 멀뚱하니 쳐다본다. 나는 제인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제인도 윙크로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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