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아픔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육체의 아픔.
왜 무한한 영혼은 유한한 육체의 고통에 영향을 받아야하는가?
#1.13 일상이란 공생의 배신
골든 튤립-노오란 꽃과 초록빛 줄기로 향기나라에서도 유명인으로 통하는 배우다. 특히 튤립들은 이목구비가 뚜렸해서 모델이나 텔런트, 배우들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이런 튤립들이 여기 튤립마을에 모여서 산다. 인간들이 본능에 충실한 것처럼 우리도 미끈한 몸매와 화사한 색깔이 뛰어난 튤립을 사랑하는 편이다. 물론 인간보다는 시각적인 것에 덜 약하지만 우리 또한 아름다운 식물들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는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데...이런 아름다운 튤립 마을의 광경은 정말로 심히 참담했다. 지옥의 비명소리만 메아리쳤으니 말이다.
"악! 아아~악~"
튤립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했지고, 몇몇 튤립은 시들어 죽기전에 벌써 죽어있었다. 마치 마네킹처럼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기절한듯 말이다. 나는 튤립의 곁에 가서 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 겁니까? 뭣 때문에 그런거예요?"
튤립들은 고통을 호소했지만 겉으로 봐선 뭐가 문제인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 아악~....뿌....아아~악...~떨썩~!"
물었던 튤립도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하다 이내 죽어버렸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렇게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이유를 눈으로도 머리로도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나 이거 참.."
튤립들은 튤립마을의 바깥쪽 튤립들부터 점차적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고통에 절규하는 그들에게서는 도저히 무슨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마을 안쪽부터 멀쩡한 튤립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들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바깥 경계쪽의 튤립들을 살펴보았다. 그들도 멀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브마을의 세균같은 물집은 보이지 않군."
하지만 멀쩡하던 튤립들은 이내 고통으로 절규하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세균도 아니고 그렇다고 메뚜기가 뜯어먹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튤립들에게 상황설명을 듣긴 어렵겠군."
사실 죽어가는 튤립들의 비명소리로 튤립마을은 아비규환 같았다. 그런데 분명한건 밖으로부터 튤립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사자가 선을 그어놓은듯 말이다. 그 죽음의 경계선에서 튤립들은 닥쳐올 죽음을 두려움속에서 자신이 직접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단두대에 오른 사형수에게 주어진 그 단두대 칼날이 아주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꺼져가는 의식이 죽음을 생생하게 스캐닝하여 끝을 절망으로 추억하는 느낌이랄까..'죽음이란게 그냥 찌리찌리하기만 할까?' 으~아~!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그냥 소름이 쫙 끼쳤다.
"아악. 아악."
비명도 계속 들으니 익숙혀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장의사들이 시체를 보는 듯 말이다.
죽음.. 사실 죽으면 끝이라고 누구나 말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말이다. 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보장해주는가? 나는 죽음이 끝이라는 것에 내 존재를 배팅해야하는가? 사실 나는 '나의 시작'도 나는 알수도 장담할수도 없다. 나는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싹이 틀때부터인가?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인가? 형체가 생길때부터인가? 존재가 생길때부터인가? 기억이 있을때부터인가? 의식이 있을 때부터인가? 언제부터 '나의시작'이라고 장담하겠는가? 그렇다면 의식은 꼭 형체속에 담겨야 하는가? 존재는 존재에 의해서만 정의되는가? ...사실 나는 나의 정말 단순한 과거인 '나의 시작'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 나의 복잡한 미래를 알수 있겠는가? 특히 죽음뒤의 미래는 어느 누구도 말해준 바가 없다. 어느누구도.. 그래서 나는 위험한 끝이라는 배팅보다 나는 계속 존재한다는데 배팅을 하고 싶다. 그게 어쩌면 내 실존에는 더 도움이 되니까. 죽음이라는 순간.. 그 물질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 뒤의 시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적어두지 못했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향기의 씨앗을 열심히 해독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비문에 예언은 다 이루어졌으니 나머지도 알고 싶은 미래에 대한 지적인 욕구 때문이다. 뭐 사실 안다고 해도 모두가 평상시처럼 바보같이 살겠지만 말이다.
"아~~아악. 아악."
여기저기에서 알수없는 단음의 비명소리가 쉴세없이 메아리친다.
"정말 끔찍하군"
저 튤립들은 이렇게 급박하게 다가오는 죽음앞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음후의 미지에 시간에 두려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껏 일상처럼 괜찮을 거라고 귀납추리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긍정의 사과나무를 심으려 할까? 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별별 생각이 다들었다. 하지만 벌써 그들의 표정은 어둡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태양이 이렇게 밝게 빛나고는 있지만 그 빛이 모두 암흙같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같았다.
"분명 여기 이 쯤이야."
우리는 혹시라도 모를 원인을 찾기위해 그 생사의 갈림선을 노려보았다. 제발 뭐라도 걸리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니면귀신이라도 나타나길 바랬다. 무슨 원인이라도 알아야 대응이 될텐데 이 막막함앞에선 아무 대책이 없었다.
그 순간이였다.
순간 땅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눈을 비볐지만 분명 땅이 움직였다.
"앗! 땅 속에 먼가가 있어!!"
나는 허겁지겁 소리를 외쳤다. 또 시퍼의 소행인가?하고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어디말인가? 어디?"
"여기 땅속이요! 이 땅속에 먼가가 있어요!!"
가엘 소장님도 처음엔 반신 반의하시다가 우선 멀쩡한 튤립의 경계를 중심으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여기 경계를 더 파봐들. 어서!"
가엘 소장님의 대원들은 부리나케 땅밑으로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튤립들이 절규하는 쪽으로 가엘 소장님과 대원들은 구덩이를 더 연장해 나갔다.
'꿈틀 꿈틀'
"엇~! 이럴수가..."
"왜 그러세요? 소장님?..."
나도 다급히 그쪽을 쳐다 보았다.
"앗!~ 저건 뭐죠?"
땅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무슨 벌레인거지? 지렁이인가?"
꿈틀대는 벌레는 지렁이같이 뭉퉁한 입대신 날카로운 이빨로 튤립 뿌리를 어그적 어그적 갈아먹고 있었다.
땅속벌레가 이렇게 뿌리를 야금야금 갈아먹으니 튤립들이 비명 횡사 할수 밖에 없었구나.
"이건 참.. 당황스럽군.."
땅속 벌레는 흙범벅이 되어 정체가 불명확했다.
"보통 지렁이나 땅속 벌레들은 식물에게는 이로운 존재인데 말이지. 또한 기생을 하더라도 매미유충이나 다른 벌레들처럼 식물들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데 말이야. 장기적으로 같이 살기 위해서 말이지.."
"그러게요.. 이렇게 식물의 뿌리를 다 갈아 먹어치우는 놈들은 처음 보네요."
가엘소장님과 나는 구멍사이로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벌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생김새가 길죽한 지렁이와 굼벵이를 합쳐 놓은 것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저렇게 털이 숭숭나고 눈이 큰 걸로봐서는 땅속에 살 놈은 아닌 것 같아."
"그래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벌레같은데.."
흙이 마르면서 큰 눈과 더듬이가 드러나자 정말 낯에 익은 벌레였다. 저 커다란 이빨만 아니면 말이다.
"저세히 보니 생김새가 나비 애벌레같기도 한데.."
"나비 애벌레요? 그애들은 잎사귀만 먹고 사는데.. 설마요?"
나는 설마요하면서 자세히 구덩이 속에 머리를 내밀고 꿈틀대는 벌레를 흝어보았다. 점점 드러내는 모습을 보니 나비애벌레가 확실했다.
"나비 애벌레가 맞군. "
"아~이런.. 어쩌다 나비 애벌레가 땅속으로??"
나비유충. 나비 애벌레는 잎만 갈아먹는다. 특히 잎이 풍성한 배추잎 같은 곳에 거처를 잡기에 향기나라에서는 그다지 큰 기생충으로는 분류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애벌레가 나중에 나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비 애벌레가 저렇게 떡하니 뿌리를 갈아먹고 있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친구가 적으로 돌변하는 느낌을 안당하고 말로만 설명하면 그 느낌을 이해할수 있을까?
이 공생관계의 무너짐. 그것은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을 되돌아 보게 했다. 이 풍성한 햇살, 광활한 대지, 거대한 공기, 넘쳐나는 물. 사실 공기중에 21%를 차지하는 산소의 농도가 조금만 변해도 지구는 불로 멸망하거나 질식해서 생물이 죽는다는데.. 지구가 태양으로 좀더 가까이 가거나 멀어져도 생명체가 살수없다는데.. 지구중력, 자기력, 오존층, 맨틀 등등 나에게 베풀어진 이 많은 환경들의 유기적 오묘함을 어찌 다 일일이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속의 우주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그런 일상이란 기적들이 법칙처럼 매일 나에게 선사되고 있으니 일상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장님. 이 애벌레들은 이빨도 무지 날카롭고 식성도 뿌리만 잘라먹고 있어서 이대로 방치했다간 오늘안에 튤립마을이 전멸할 거 같아요. 이제 어쩌면 좋죠?"
순간 가엘소장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괜히 내가 어쩌면 좋죠라고 물었다. 저렇게 민망할 정도로 고민에 빠져 버리시니 말이다.
"참.. 답이 없군. 땅밖이라면 어찌 싸우던지 죽이던지 지지고 뽁던지 할텐데..저 땅속에서 꿈틀대고 있으니 어쩌잔 말인가?"
'그래. 땅속에 있는 저 애벌레들과 싸우는건 무리다. 땅을 파내려가기전에 튤립마을은 전멸하고 말꺼야.'
"으아악~"
튤립들은 공포에 질려서 더 크게 비명을 외쳐대었다.
"문제구만..알뿌리가 큰 튤립들이여서 먼저 저렇게 갈아먹는거 같은데..저 알뿌리가 다 먹히면.."
가엘소장님은 그 뒤의 상황을 애써 말을 잘랐다. 튤립들은 그래도 먹을거라도 있지만 다른 식물들의 뿌리를 갈아먹는 날에는 정말 순식간에 뿌리를 잘라버릴 것이고 알뿌리가 없는 식물들은 더 빨리 전멸할수도 있었다.
"대책을 세워야하는데..땅속애벌레라..난감하구만.."
그러던 찰나 황급히 전보가 왔다.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황급히 달려온 대원은 숨을 가다듬으며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허브마을에 발생한 전염병이 변종을 일으키면서 옆 들꽃마을로 퍼졌습니다. 다른 마을들도 퍼진듯 합니다."
"아니 그 몇시간 사이에 어찌 옆마을로 그렇게 빨리 퍼진단 말인가?"
"네. 소장님! 저도 자세히는 모르겟지만 허브마을의 증상과 비슷하기도 하면서 반응이 좀 더 심각해 진것같습니다."
"심각하다니?"
"허브마을에는 물집만 생겼는데.. 들꽃마을에는 물집이 썩고 악취도 나고 어떤 곳은 검은 가루도 생겼습니다."
"검은 가루??"
"네."
가엘소장님은 잠시 골돌히 생각에 잠기시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튼 큰일이구만..참..허~지금 튤립마을의 저 애벌레들도 처리해야하는데 이 무슨..허~ 참.."
"소장님. 튤립마을은 애벌레들이 벌인 일인걸 알았으니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고 우선 전염병부터 빨리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이대로 두면 이 튤립마을은 오늘안에 전멸할 걸세. 리겔~"
"그치만.. 지금은 딱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소장님.."
"그렇긴 하지. 땅속에서 싸울수도 없고 땅을 파서 끄집어 낼수도 없으니.. 참.."
눈앞에서 죽어가는 튤립을 보면서 가엘 소장님은 떠날수가 없었다. 어찌 죽어가는 튤립들을 두고 떠난단건가.
"리겔. 우선 튤립마을은 내가 대책을 찾아볼테니 들꽃마을에 퍼지는 전염병을 파악해 보고 내게 알려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들꽃마을로 가기로 했다. 가면서 허브마을에 들러서 베델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봐. 베델~"
"어 리겔. 튤립마을은 어찌된 건가? 난 허브마을의 세균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어."
"어 거기 상황은 복잡하니 가면서 설명하기로 하고 빨리 들꽃마을로 가봐야해."
"들꽃마을? 허브마을은 어쩌고? 지금 물집이 생기고 죽고 다들 난리들이야."
"알아. 하지만 우선 들꽃마을로 전염병이 퍼졌다니 거기가 시급해. 더 퍼질 경우엔 겉잡을 수 없는 향기나라의 재앙이 되고 말거야. 그쪽 사태가 더 심각하다고 해."
"그래?? 알았어. 빨리 가보자."
"응."
허겁지겁 들꽃마을로 가면서 나는 허브마을의 원인이 궁금해서 베델에게 물었다.
"그런데 허브마을 세균에 대한 결과는 어때?"
"그게 예상했던 대로 동물의 천연두나 수두 같았어. 고름이 생긴거로 봐서는 세균감염같은데 번식력으로 봐서는 바이러스성 같기도 해. 아마 세균과 바이러스의 중간적인? 바이러스에 더 가까운 그런 존재같아.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런 동물의 질병이 식물에게 옮다니 나도 너무 의아해. 그게 가능한 건가? 이건 머 곰팡이랑 장미랑 결혼해서 감자를 낳았다는 소리보다 더 허무맹랑하구만 그래."
"그러게 말이야. 그나저나 정말 그런 인간의 질병이면 어쩌지?? 우리 식물에게는 그런 질병에 대처할 면역력은 없는데 말이야.."
"그러면 정말 인간이 흑사병으로 멸망할뻔 했듯이 향기나라에 큰 재앙이 될꺼야.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 작디 작은 바이러스때문에 설마.."
작디 작은 바이러스... 세포에 기생하여 자신의 유전자 RNA를 번식시키는 존재. 평소에는 무생물로 지내는 존재. 숙주 세포를 만나면 번식하는 생물이 되는 존재. 그런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자적인 아이러니한 존재. 그 작디 작은 존재때문에 거대한 식물들이 쓰러지고 향기나라가 멸망할수도 있다니 순간 섬득해졌다. 평상시에 그 작은 존재가 가만히 얌전히만 있어주는 것도 어찌보면 그는 무생물로 나는 생물로 살아가는 공생일텐데.. 그가 생물로 돌변하는 순간. 이 작은 공생관계는 깨어져 버렸다. 저 나비애벌레처럼 말이다. 작은 나비의 날개짓에 태풍이 몰려오듯 작은 바이러스앞에서 등불같이 흐느끼는 향기나라의 운명이 느껴졌다. 막연한 알수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별일은 없을꺼야."
"암!"
우리는 머리속으로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상상을 애써 막으며 허겁지겁 들꽃마을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 제발 우리 향기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들꽃마을에는 별일이 없어야할텐데.. 저 멀리 들꽃마을에 검은 먹구름이 솟아 오르고 있다.
'小說주의보 > 향기나라뮤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5 누군가의 시나리오 (0) | 2012.07.02 |
---|---|
#1.14 삶이란 머피의 법칙 (0) | 2012.04.27 |
#1.12 보이지 않는 싸움 (0) | 2012.04.04 |
#1.11 '누군가'에 얽힌 비밀 (0) | 2012.03.28 |
#1.10 이상한 진딧물들 (0) | 2012.02.29 |